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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구 발전사
2007-07-13 15:06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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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구 발전사

 

 

일제시대 이후부터 1960년대 - 1960년까지는 목공구, 농공구, 작업공구와 단순한 선반, 연삭숫돌, 커터 등만을 생산하였다.

 

1970년대 - 1970년 대 들어 자동차 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절삭용 기계공구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 이후 - 1980년에 이르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내구성과 정밀도 면에서 외국 공구와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분야에 있어서도 절삭 공구뿐만 아니라 에어공구, 초경공구, 유압공구, 측정공구, 전동공구에 이르기까지 공구 전반에 걸쳐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다.

 

 

 

공구 시장의 출발점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청계천의 공구상가는 우리의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해방 직후 일본이 남기고 간 공장에서 각종 부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것이 청계천 노점상으로 흘러들면서 공구상가가 형성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물품들이 청계천에 모여 거래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장은 활성화 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에 의해 수많은 기계공구들이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이 시기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품목은 단연 전동공구였다. 찾는 사람은 많고 물량은 적었으므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공구상가들은 급성장했고 이미 국내 공구 시장을 주도하는 메카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 열풍으로 수많은 공장들이 문을 열었고 굴뚝 연기가 멈추지 않았던 시기다. 자연히 공장 가동을 위한 기계 부품과 공구 들이 많이 필요했다. 수요는 급증했다. 공구상가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서면 많은 공구상가들이 정부 정책 에 따라 구로와 시흥 등지로 이전해야만 했다. 이후 공구 시장은 대단위 기계공구 유통단지 형태로 집중되는 추세에 있다.​